
평온한 라오스에서 평온함 외에는 찾을것이 별로 없다, 나의 지금은. 밤이란 잠 자는 시간이 돼었다. 8시가 돼면 몸이 싸인을 준다, 자라고.
어느 하루, 밤에 나가야 할 일 생겼다. 어느세 밤길이 두려워졌다. 익숙함이 더뎌진것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차의 운전대를 잡았다. 허나, 차는 유유히 목적지를 향했다. 무엇이나 그렇듯 자동 모드로 운전 실력이 나오는듯 했다.
모든게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이던것이 밤에는 전기로 의한 빛으로 눈을 혼란시켰다. 아! 밤도 아름다움이 따로 있구나! 하며 놀라고 있었다. 색색깔 등으로 치장한 아한속에 사람들은 Renoir의 한폭의 그림처럼 미소를 띠우고 하물며, 등 하나만으로 비추는 길거리 노점도 제나름대로 로맨틱하게 보였다. 상상외로 밤은 멋 있었다. 또 다른 세계의 맛을 보는것 같았다.
쉬라고 있는 밤이 삶의 기력이 넘치는 이들에게는 그저 인공빛이 주는 또하나의 낮이다. "밤에 세계가 따로 있네~~!" 마누라에게 어린아이의 순진한 톤으로 말했다. 무슨뜻의 말을 하는지 몰랐던 마눌은 데꾸도 안했다. 아직 마눌은 나의 멜론칼릭한 무드보다 Renoir의 사람들 처럼 밤이 주는 매력을 낮의 연장으로 생각하는듯 했다. 나처럼 특이하다고 생각보다는…
느낌이란 밤과 낮과 같이 누구에게나 다르다. 같은것을 보고, 하고 있더라도 느낌은 서로 다르다.
지구 한쪽에선 미사일이 비처럼 떨어지고 자유를 혼속에서 부터 매마른 목소리로 외치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자유가 너무 많아서 남여가 백가지 넘게 있다고 외친다. 누가 인간과 삶이 모두 평등해야한다고 했을까?
생각은 자유다. 그러나 생각할수 있는 여유는 자유가 아니다. 왜냐면 그것을 내가 컨트롤 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인간은 평등하지 못한 운명에 의해 이어지는 휠속에서 "다른이"의 생각에 맞춰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틀안에서 벗어난 사람들도 가다보면 또 같은 사람들을 만나 또 다시 휠을 타게 됀다. 하지만 그들의 틀은 성공이란 이름아래 Controlling Wheel 로 바뀐다.

삶이란 "착각" 이다. 궁극적인 삶이란, 태어나서 고생하다가 죽는것이다. 우주의 시간으로 볼때 인간의 삶이란 단 일초도 안됀다. 허나 그 짧은 시간속에서 우리는 생각을 하기에 생각속에 노예가 된다.
왜 옛날에는 브라민과 스님들이 그렇게 많았는지 이해가 간다. 왜 그들의 목표가 나를 터득하기 위해 살았는지 이해가 된다. 나를 모르면 착각의 혼돈속에서, 끊임없는 바퀴 틀 안에서 Stupidity 란 낙인이 찍인것도 모르고 나를 외친다.
다 내 안에, 내 생각속에 있다. 내가 없으면 우주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그런 내가 누구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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