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카메라를 메고 길을 걸었다.
골프에 관심이 없어지니 걸을 일이 없어져 좀이 좀 쑤시는 찰라에 기름이 파동이 와서 차에 있는 기름을 아끼게 돼며 건강을 위해 뭘 좀 한것 같아 기분이 좋다.
걷다 보면 차타고 지나가는 것보다 평상시 안보였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있으면 카메라가 뭘 보면 좋아할까? 하는 의문에 눈길에 시선이 심상치 안아 진다.
이 행위를 스트리트 포토그라피 라고 한다. 길거리에서 찍는 눈요기들. 앙리 카티에 브레송처럼 찍으려고 드리데지만 그 결정적인 순간은 찾기 힘들다. 보는 눈이 같을수가 있나?!
라오인들은 사진 찍히는것을 매우 좋아한다. 애들도 마찬가지다. 카메라를 의식하면 두 손가락부터 (peace sign) 올라간다. 그리고 웃는다. 웃는 얼굴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허나, 나는 얼굴에 따라 내가 원하는 표정이 나올때까지 셔터를 누른다. 그래도 안 나오면 손짓 발짓하며 나의 의도를 전해서 나의 만족을 위해 셔터를 누른다. 편집하다 보면 하나도 건지기가 어렵지만 가끔은 놀라키는 이미지도 나온다. 이젠 놀라움보다 정서적인 스토리텔링을 하는 작품이 나오길 바라지만 그게 뜻대로 돼기엔 아직도 더 많이 셔터를 늘러야 할 것 같다.
왠만한 길거리 사진은 사진 역사책에나 많이 나오지 벽에 걸어 놓고 보기엔 그 가치가 미비한것 같다. 왜냐면 보통사람 눈으로 사진을 읽는다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도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읽기 쉽지 않다. 어텐션 스팬이 5초도 안돼는 평민에게 사진을 읽어라 하는 것은 무리다. 첫째, 아무런 관심이 없는데 사진을 읽는 능력이 어뗳게 발휘하나?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풍부한 지식이 없이 사진을 논하는것은 술 취한자와 대화를 하는 것과 별로 틀릴것이 없다.

이 사진을 읽어보자.
이 사진은 길거리 사진은 아니지만 출사를 나갔을때 찍은 사진이라 나에게는 그런 부류로 보인다.
이 여성은 아름다운 어린 소녀의 엄마입니다. 그녀의 얼굴은 평범한 라오스 여성의 얼굴이지만 미소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롭습니다. 손이 없다는 사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경지에 이른 미소입니다. 손이 없이 산다는 것은 얼마나 비극적인 일일까요? 하지만 그녀의 미소는 그 없는 손을 모아 사바이디 (인사말). 우리는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모로서 손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이 나이까지 살 수 있었을까요?
관심을 가지면 궁금증이 생깁니다. 사진은 그냥 보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보고 느껴야 하는 것이니까요. "느낌'이 거의 사라진 시대에 이것을 바라는 것은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것과 같지만,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 사진을 보자.
가족 사진이다. 라오스 시골에는 이렇한 집들이 많다. 벽돌을 쌓아만 놓고 마무리를 안한다. 보통 가정은 여자가 일을 하고 남자는 놀고 먹는다. 허나 이 집은 여자가 걱정 투성이다.
색상을 보면 칙칙한 검은색 배경에 자홍색이 돋보이며 조용히 외치고 있습니다, "내가 이 사진의 주인공입니다." 삼분의 일의 법칙이 잘 적용되어 작품의 중심인 불안한 여자의 얼굴이 거의 완벽하게 중앙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전체 분위기를 정의합니다.
사진은 카메라라는 차갑고 기계적인 도구를 통해 보는 사람이 작가의 의도를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명작이란 작가의 설명이 없어도 느낄 수 있는 사진이지만, 그 한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풍부한 가이드가 필요합니다. 즉, "갭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합니다.
모든것과 마찬가지로 독불장군은 없다. 서로서로 같이 가야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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