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내, 나의 “마누라”

~에 의해 amond | 3월 24, 2026 | 글쓰기, 라오스의 태양 아래

밤시 & 사유리 웨딩

한국에서는 아내를 가리키는 특정 단어가 있습니다: 마누라마누라라는 말은 부부가 서로 동등해졌을때 남편이 부인을 부르는 말 같다. 서로 틀린 배경에서 왔지만 만나서 같은 길을 옆에서 오랜시간 동안 손잡고 걸어 왔기 때문에 서로 서로 모르는게 없다. 나를 나보다 더 잘아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이 어떨때는 무섭다. 마누라라는 것은 무서운 존재다. ㅎㅎ

아무리 잘나가는 남편도 마누라 앞에선 수그러지는것이 일상이다. 영웅뒤에는 여자가 있다는 말이 맞는것 같다. 여자는 처신에 민감하다. 그래서 남편이 잘나가야 한다. 남편이 잘나가면 자연히 마누라도 잘나가게 돼어있다. 안 예뻐도 예쁘게 보이고, 다 커버가 된다.

현대 시대에서는 잘 나간다는 것은 돈걱정이 없다는 뜻이다. 허나 돈은 많아도 걱정, 없어도 걱정이다. 있는데 생기는 걱정이, 없어서 생기는 걱정보다는 낳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고 본다. 사실, 있으나 없으나 걱정은 걱정인데, 뇌구조를 뒤얺키게 하는 효과는 똑같은데. 걱정이란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뒤돌아보면 걱정이 많았던 시절이 서서히 없어지는 기억력 속의 기억으로 뚜렷하게 추억으로 남는다. 삶의 이치 아닌가?!?! 금방 죽을것도 아니고 지금 시대에 못 먹을 것도 아니고...

쇼펜하워가 늙으면 혼자 있는것을 터득해야 한다고 했다. 과연 혼자 있을수 있을까? 마누라라는 존재와 머리가 팟뿌리 될때까지 살아야하는데? 마누라는 죽을때까지 마누라다. 마누라는 나다.일심동체. 쇼펜하워는 독신으로 살았다. 마누라라는 개념을 알수가 없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 논 결혼제도 아래 커플이 돼는 것은 당연사다. 둘이 하나가 돼는것.

나의 마누라는 미모의 여인이다. 젊었을때 배우를 했냐고 물어 볼 정도로 아직 잘 생겼다. 내가 미를 추구해서 그런지 잘 생긴 마누라가 옆에 있어 만족이다. 가끔은 마누라의 얼굴을 쳐다 보면서 혼자서 속으로 운이 좋다고 느낀다. 이젠 늙어서 쭈글이짜글이 됐지만 잘 생긴건 늙어도 잘 생겼다. 보통 그 나이면 몸이 퍼져 아줌마가 돼는데 우리 마눌은 체격도 아직 젊다.

우리 마눌의 포커스는 온통 나에게 와있다. 나같은 이기주의자가 아니면 질식해서 죽었을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텔레파시가 통한것 처럼 풀어준다는 것은 보통 인연이 아니다. 나는 나의 운으로 생각한다. 예술가의 마누라라는 것은 보통 인내심과 관심으론 버티기 힘들다.

늙으면 자연 스럽게 남성은 여성 스러워지고 여성은 남성스럽게 변한다. 그래서 서로의 롤이 바뀐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아직도 마초하다 이거다. 아직 철이 덜 드렀다고나 할까? 아무리 공부를 해도 아직도 모르는것이 태반인데 어느 시간에 늙나?!?!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아무리 일심동체라도 서로 다른 배경과 경험을 가진 두사람이 하나가 됀다는 것은 철학적으로 말이 안됀다. 내 안에 우주가 있는데 또 다른 내가 있을수 있을까?

바로 여기서 마찰이 발생합니다. 우리가 "한 몸'이라고 해도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것은 철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내 안에 온 우주가 있는데 어떻게 또 다른 "나'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부부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의견은 다를 수 밖에 없다. 한쪽이 저줘야 이기는 싸움이다. 보통 여자가 이긴다. 그런데, 한번도 저본적이 없는 나라는 남자는 쉽게 받아 드릴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런 문제라도 없으면 산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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