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비록 사진계의 피카소라 불릴지라도, 오랫동안 간절히 원했던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오랫동안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마치 배터리가 닳아서 같은 초침만 계속 째깍거리는 시계 같았다.
나는 추상 표현주의와 잭슨 폴록의 그림들을 보며 자랐다. 그는 자신의 액션 페인팅으로 그 예술 운동의 대명사가 되었고, '물감을 흩뿌리는 잭(Jack the dripper)'이라 불렸다.
아무도 감히 그의 스타일을 모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것은 문화에 너무 깊이 뿌리내린 스타일이라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비슷한 것을 시도하는 것일 뿐, 그가 했던 방식 그대로는 아니었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나 자신을 찾는 길을 걸어왔다. 나는 그저 지금 그림을 그리고 싶다.
내게 그림을 잘 그릴 재능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했다. 그래서 자리에 앉아 낡은 슬리퍼를 그렸다. 나는 그릴 수 있었다!
대학 시절 회화 수업을 들으며 내 한국 성씨인 '유'를 그렸고 교수님은 그것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셨다. 하지만 거기가 끝이었다.
이제 60대가 되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타오르는 열망이 생겼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캔버스와 물감을 사서 그냥 하면 되는데! 그럼 어떤 색을 사야 하지? 캔버스는 얼마나 커야 할까? 나는 무엇을 그리고 싶은 걸까? 이런 사소한 생각들이 나를 미치도록 괴롭혔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그 과정을 미뤘다. 사실, 몇 년 동안이나 말이다.
미술 학교에서 배운 것 중 하나는 우연에 맡기고,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기도 했다.
나는 어떤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 4x1 미터짜리 현수막을 만들어 집 앞에 걸어두었다. 그런데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 날, 그것이 바람에 휩쓸려 떨어져 버렸다. 내게는 큰돈을 들여 만든 거대한 현수막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순간, 나는 이것이 내 캔버스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흑백의 주택용 페인트를 사서 잭슨 폴록처럼 해보는 거다.
그 갑작스러운 아이디어는 내 몸을 움직이게 할 만큼 나를 흥분시켰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검은색 수성 페인트와 큰 붓을 샀다. 시너(희석제)가 필요 없었기 때문에 수성 페인트로 골랐다. 그러다 30대 때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니 도구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진과 마찬가지다. 그 도구를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신조차 쉬셨던 일요일, 나는 나의 '액션'을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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