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만의 라운딩

4월 16, 2026 | 글쓰기, 라오스의 태양 아래

7th 부터 6th

이른 새벽, 골프 코스에 나와 있다. 마지막 라운딩 이후 무려 3개월 만이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체 사방은 귀뚜라미와 두꺼비들의 합창 소리로 가득하다. 곧 용광로 같은 태양이 떠오를 기세다.

골프에 대해 알 만큼 안다고 자부하기에, 오늘이 내 몸과 마음에 얼마나 고된 하루가 될지 잘 알고 있다. 홀을 거듭할 때마다 내 상태는 변태(metamorphic change) 수준의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첫 번째 티박스에 섰을 때, 머릿속을 채운 건 드라이버 샷에 대한 걱정이 아니었다. '대체 왜 이 머나먼 라오스의 뙤약볕 아래에는 한국인 골퍼들뿐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그들이 코스를 장악하고 있었다. 캐디들은 누가 누구와 치는지 이미 다 꿰고 있다.

  • 김 사장님 & 이 사장님
  • 장 사장님 & 박 이사님

마치 한국의 로펌 명단 같다. 한국인이 없다면 캐디들도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한국의 저력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골프는 누구나 즐갈수 있는 운동이 아니다. 많은 돈과 시간, 그리고 친구가 필요하다. 라오스 골프장에서는 한국인이 귀족이고, 라오스인들은 마치 하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드라이버를 휘두르자 마음은 잊었을지언정 몸의 기억은 살아 있었다. 공은 평소처럼 150야드 지점 우측 벙커를 가뿐히 넘겼고, 나 스스로도 깜짝 놀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문제는 두 번째 샷부터였다. 거리측정기가 있다는 사실도 잊었고, 더 심각한 건 어떤 클럽으로 어떻게 쳐야 할지도 막막했다는 것이다. 찰나의 순간, 아무도 모르는 당혹감이 엄습했다. 다행히 곧 기억이 충격을 덮었다. 3번 우드를 잡고 그립을 짧게 쥐었다. 공은 오른발 쪽에 두었다. 하지만 결과는 30야드 '뱀 샷'이었다. 헤드업을 한 것이다. 골프를 자주 칠 때도 가끔 저지르던 실수다.

세 번째 샷, 100야드를 남겨두고 피칭 웨지를 잡았다. 제발 뒷땅만 치지 말자고 기도했다. 다행히 뒷땅은 면했다. 공은 높게 떠서 거의 직선으로 날아가 핀 옆 2미터 지점에 멈췄다. '컨시드 보기' 확정이다. 내 친구가 매 샷을 하고 난 뒤 늘 말하듯, "나쁘지 않네(Not bad)"인 상황이다.

그동안 함께 라운딩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대부분 우연이었고, 어떤 이들은 운명적인 인연이었다. 하지만 내 골프 세계에서 주인공은 오직 나 자신뿐이다. 그 누구도 특별히 돋보이지 않는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는 현재 라오스 최고의 골퍼다. 큰 내기 경기에서 늘 승리하고, 라오스를 찾는 골퍼들을 이끄는 거대한 팬덤도 거느리고 있다. 그와 치고 싶으면 그의 스케쥴을 맞추어야 하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에게 골프는 이제 거진 비즈니스가 됐다.

그와 함께 치면 나도 덩달아 잘 치게 된다. 골프는 잘 치는 사람하고 쳐야지 자신도 잘 치게 돼어있다. LCC(Lao Country Club)의 파-4 7번 홀은 핀은커녕 드라이버 낙하지점도 보이지 않는 도그레그 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쓰리온'만 해도 만족하며 파5처럼 여기는 긴 홀이다. 나는 그와 함께 칠 때 그 홀에서만 두 번의 '투온’을 기록했다. 내 골프 실력으론 불가능이 가능해 진것이다.

그가 핀을 향해 날리는 공의 궤적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공이 반드시 핀 근처에 떨어질 것이라는 확신, 즉 안정감과 경외감이 느껴진다. 그린 끝에서 퍼팅한 공이 홀컵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예술가의 작업'을 직관하는 기분이다. 아무도 나의 작업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매 라운드마다 그것을 증명한다. 그것이 바로 '마스터'의 모습이다. 그는 자기 분야의 숙련도가 너무 높아 우리처럼 실수를 하지 않는다. 가끔 그가 해 주는 한마디가 $1,000이상의 레슨 효과를 만들어 준다. 한 마디속에 깊은 골프의 철학과 테크닉이 들어있다. 나에게 그는 골프계의 피카소다, 라오스에서는.

내 평소 습관들이 다시 튀어나오기 시작한 건 3번 홀부터였다. 2번 홀은 파5였는데 가볍게 파로 막아냈다. 하지만 3번 홀에서는 드라이버가 왼쪽 러프로 감겼고, 세컨드 샷에선 헤드업을 했으며, 클럽 선택 미스와 엉망인 샷, 불안한 퍼팅까지 겹쳐 결국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점수인 더블 보기를 범하고 말았다.

다음 홀은 긴 파3 홀이었다. 1년 회원권을 포함해 여러 상품이 걸려 있는, 홀인원을 노려볼 수 있는 곳이다. 치기 전 발아래 놓인 공을 내려다볼 때면 항상 똑같은 생각이 든다. "제에발... ㅎㅎㅎ!!!!!!" 다행히 온그린으로 파로 마무리했다.

바로 전 홀에서 드라이버를 안 잡았더니 그새 드라이버 스윙을 까먹고 말았다. 다운스윙 때 왼쪽 어깨를 너무 빨리 여는 바람에 공은 왼쪽으로 가버렸다. 그래도 그 홀은 페어웨이가 넓어서 공이 세미 러프에 떨어졌고, 나름 깔끔하게 다음 샷을 날렸는데... 하필 벙커로 쏙 들어갔다. 나는 벙커가 정말 싫다! 내가 상상하는 벙커의 모래는 “오거스타(Augusta)”에나 있지, 이런 흙바닥이 아니다. 결국 보기로 마무리했다. 뭐, 나쁘지 않다. (Not bad.)

이어지는 다음 홀은 정말 긴 파4 홀이라서 웬만한 실력자들도 투온(2-on)이 힘들다. 퍼팅에 의지해 간신히 파(par)를 세이브해야 하는 그런 곳이다. 그러고 나서 또 파3 홀이 왔다. 거의 홀인원이 될 뻔했지만, 짧은 버디 퍼트를 놓치는 바람에 만족스럽지 못한 파에 그치고 말았다. 다음 파5 홀은 평범한 샷들을 남발하며 그나마 파로 마무리했다. 9번 홀에 이르자 경기가 다 끝난 것 같다는 환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드라이버를 풀스윙했더니 공이 옆 홀 벙커에 빠져버렸다. 공보다 모래를 먼저 치게 될 거라 예상하고 클럽을 세 단계나 높여 잡았는데도 어프로치 샷은 짧았다. 하지만 운 좋게 홀 근처에 붙으면서 보기를 기록했다. 그 홀도 나쁘지 않다.

'아! 이제 게임 끝이다'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아직 9홀이나 더 남았는데도 다 끝났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후반 9홀에 들어서자 고관절은 쑤셔오고 발가락에는 쥐가 나기 시작했다. 라운딩이 끝날 때쯤의 내 상태는 마치 지구로 돌아올 연료만 간신히 남겨둔 채 화성에 고립된 기분이었다. 내가 왜 골프를 싫어하기 시작했는지 비로소 이해가 갔다.

나는 평생 운동 신경이 좋다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사람이다. 어릴 적엔 무엇이든 최고였다. 하지만 인생의 전성기인 '청춘'은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큰 사기다.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려서 늘 "그땐 그랬지"라는 과거형으로만 남는다. 젊었을 때 대단하지 않았던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청춘, 그것은 인류 역사상 존재하는 가장 거대한 사기다.

이것이 골프가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는 것. 때로는 일이 내 뜻대로 풀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건 그 나쁜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기술을 갖췄느냐 하는 점이다. 그러려면 매일같이, 정말 지겨울 정도로 수만 개의 공을 쳐대야만 한다. 그래야만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신체 협응력과 정신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 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까지는 멈출 수가 없다. 청춘은 그토록 짧고, 새로운 젊음은 어느새 등 뒤까지 바짝 쫓아와 짖어대고 있으니까. 어찌 받아 드려하는가가 사람을 만들어 낸다.

3개월 만의 라운딩을 마치며 내린 결론은 이렇다. 나에게 골프란, 친한 친구들—사실 딱히 없으니 친한 지인들—과 함께 재미삼아 하는 소일거리일 뿐이다. 그저 내 정신과 신체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는 내가 여전히 청년이라고 생각했다. 인생의 모든 것들이 그렇듯, 그것 역시 얼마나 크나큰 거짓말인가? 그래도 내가 나를 속이고 사는것이 남을 속이는 것 보다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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