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2026년 6월 18일 | 라오스의 태양 아래, 글쓰기

일요일에

지난 11년 동안 나에게는 매일이 일요일이었다. 그저 전반적인 삶과 사진, 그리고 시간에 대해 생각해 왔다. 여기 내 ‘몽드리안의 둥지(Mondrian's Nest)’에 앙아, 불과 1피트짜리 잔가지에서 15미터 높이로 자라난 커다란 애플망고 나무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 나무가 그 흘러간 시간들을 지켜보았구나 싶다. 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머리를 자르듯 가지치기가 필요하긴 하지만, 매년 가장 달콤한 애플망고를 내어주며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거창한 질문이다. 내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

모든 철학자와 현자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대답하려 애섬던 엿 같은 질문들이다. 부처는 이를 요약했다. 우리는 태어나고, 고통받고, 그리고 죽는다! 간단하다.

우리는 모두 태어났으니, 틀림없이 고통의 단계를 겪고 있을 것이다. 당신의 문제는 무엇인가? 모든 것은 문제투성이다. 모든 것은 모순적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는 모든 문제가 스스로 해결되는 시점, 즉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저 살아내는 것뿐이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겪어내려 애쓰며 늘 고통받을 뿐이다. 삶이라는 것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사람은 우리 중 극소수에 불과하다.

일론 머스크가 방금 최초의 조만장자가 되었다. 반대편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이 단 한 사람이 그렇게 부유한 것은 잘못되었다며 짖어대고 울부짖는다. 왜 안 되는가? 나는 묻고 싶다. 그도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태아였다. 당신과 똑같은 출발선에 있었다. 그가 단지 더 빨리 달렸을 뿐이다.

매사추세츠주 뉴턴에서 7학년 때 나는 가장 빠른 달리기 선수였고, 그 후 LA로 이사 가서 학교에 다녕다. 체육 시간에, 내가 아주 빠르다고 생각했기에 100야드 달리기에서 질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나보다 키가 몇 인치 작은 흔인 아이가 출발부터 나를 휘 하고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아!" 하는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그 ‘아!’를 일론 머스크에게 적용해 보라.

인생에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거지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조셋 캖벨(Joseph Campbell)이 말했듯, 당신 자신의 천복(bliss)을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당신이 원한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이 세상의 일론 머스크들이 되는 방법이다. 모든 철학자와 현자들이 깨닫고 사람들에게 전하려 했던 것과 같은 답이다. "너 자신을 알라." 만약 당신이 그것을 깨달았다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일론 머스크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다.

사진을 통해 내가 깨달은 한 가지 방법은 시간에 관한 것이다. 카메라는 당신이 보는 것을 복제해 내지만, 당신은 정말로 ‘보고’ 있는가? 카메라가 당신이 본 것을 복제하는 데는 단 1초의 몇 분의 1밖에 걸리지 않는다. 당신은 그 짧은 찰나의 시간에 무엇을 보는가?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보았는지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자신을 아는 지혜를 얻기 위해 당신보다 앞서간 사람들이나 당신이 현재 존경하는 사람들로부터 배우라. 그건 누구든 될 수 있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 고통을 삶의 환희(joie de vivre)로 승화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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