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쓴다는것은.... 어쩔때는 술술 자연히 나오고, 어떤때는 고독만이 답이다.
이젠, 자연히 나오지 않으면 중단하고 자연히 나올때까지 기다린다. 어느듯 편안함을 선택한다
중단한 글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모두 자연의 이치를 기다린다.
내 안에 이어질수 있는 문장이 있다는걸 알고 있으나 어느 날은 깊은 늪에 빠져있는 것 같다.
어느 날 헤어나겠지~~. 희망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그렇지, wishful thinking 이겠지.
누군가가 구해주길 바라겠지. 아니면 이어지는 순간에 번쩍 저절로 찾아오겠지~!
참 어려운 예술이다. 글.
난 감동을 추구한다. 내 사진을 보면서 누군가 감동돼어 흑흑 거리길 바란다. 그러나 나는 역사적으로 어떻한 이미지를 보고 울어본적이 없다. 그런데 남이 그러길 바라는건 또 하나의 wishful thinking이다. 마음은 간사하다.
이리저리 내가 편한곳으로 가기만 바란다. 세월이 당연한 코스라한다.
내가 쓴 글들을 나중에 읽어보면, 그래도 영어가 젤 내 감정과 맞는듯 하다. 신세대 AI 는 아직 인간의 감정을 이해 못한다. 한국어 번역을 보면 웃기지도 않는다. 반말을 써도 존대말로 나온다. AI 도 남을 의식하나 보다. 이미지로 가는 세상에 글은 그 중요성을 잃어가고 있는듯 하다. Attention span이 3초도 않되는데 무슨 글을 읽겠노??? 눈 깜박할사이 에 읽는 썸내일만 읽으면 결정이 나오는데~~!
책이란 사물이 짐이 돼어 가는 세상에 어느듯 우린 살고 있다. 그 속의 있는 지식과 지혜를 알아보지 못 한체~.
어릴적 초등학교때 미국서 자연적으로 배워지는 영어로 우리 부모에 대해서 글을 썼다. 선생이 보더니 감탄하면서 이건 하나의 "Stream of Consciousness"란 용어를 썼다.
10살 짜리에겐 너무나도 버거운 단어이었다. 허나 지금도 그버릇을 못 고치고 있다. 흘러나오는대로~~!
지나간 시인들, 문학가들, 작가들의 독특한 문장들을 일일이 분해하기 귀찮아 나를 향한 자만심으로만 글을 쓴다. 분석돼지 않은 예술. 예술은 예술이나 나만의 예술. 글쎄, 내글이 쌓이면 분석이 돼겠지...
훗날, 글에 대해 파고 드는 사람이 분석하겠지. 단어의 의미, 단어와 단어 사이, 단어가 모여져 잃으키는 감정. 감정이 불러 잃으키는 은유와 비교.
이 또한 비쥬얼 예술이다. 눈이 보니까.
파고 들기 시작하면 글꼴까지 예술이 됀다. 타이포그래피. 단어를 만드는 핵의 모양이 벌써 기반을 잡는다. 폰트를 보면 시대가 보인다. 나는 내가 어릴적 배운것의 의해 글꼴 Bodoni 와 Garamond를 좋아한다.
과감한 대조적임과 눈에 띠지 않는 우아함을 좋아하는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것이 이 세상에 제일 좋은것 같다.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노털이 좋아한다고 신세대가 좋아하는것이 아니다. 아무리 레트로를 좋아한다고해도 시대가 다르다. 내가 태어난 시대는 그들이 또 다른 시대를 만들수 있게 하는 발판이 됀것뿐이다. 공산과학이 현실이 돼는 시대, 그게 아무렇지 않은 시대.
손목시계는 개인이 시간을 알기 위해서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손목시계의 성능은 시간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다. 시간이란 개념 자체가 바뀌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논 기계의 운명. 이것이 색다른 인종을 탄생 시킬것이다. 니엔드로설, 호모사피안, 그 다음은 무엇일까? 호모메케니카? 끝없는 진화이다.
상상을 하다보면 다 부질없다.
다 웃긴다. 내 세대에서는.
허나 이세상에는 생각을 현실로 만들수 있는 존재들이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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